2년전, 그러니까 대학 4학년때.
교직이수의 과정의 일환으로 교생실습을 나갔다.
정장이없어 정장 비스무리한 차림으로 첫 출근을 했다.
첫날 배정받은 학급 인원 목록을 보며 했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나 : 아 남학생반이군요?
담임선생님 : 네? 호호 여기 남중이에요.
나 : ...?
학교 이름이 [OO중학교]여서 남녀공학인 줄 알았는데 남중이란다.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내가 맡았던 1학년 3반 아이들은 너무 순수하다 못해 애들이었다. 만 13살짜리들에게 교복을 입혀놓고 한 공간에 모아두면 어떨지 상상이 가는가?
처음에는 '여러분 오늘은 의복을 배워볼건데요!' 로 시작했으나 얼마 가질 못하고 '오늘은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배울거다!' 로 바뀌었다.
결혼했느냐, 여자친구 있느냐, 군대 갔다 왔느냐, 게임 하느냐 별 질문이 다 쏟아져서 다 대답해줬다. 일주일동안 수업 들어가는 반마다 이야기를 해줬더니
다음부터는 물어보질않았다.
다른 교생들은 열심히 PPT준비하고 알아보고 했는데 나는 책을 달랑 들고가서 수업했다. 기술가정을 맡았는데 준비할게 없었다... 수업전에 슥 읽고 수업했다.
내용이 어려울 것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내가 입고있는 옷과 주변에 사물로 최대한 비유를 해 가며 수업을 진행했다.
남중이다보니 여자교생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나에게 기술가정을 더 배우고 싶다며 번호를 알려달라는 학생이있었는데...
같이 기술가정을 맡은 여자교생 A양의 번호를 모른다고 대답했더니 이녀석, 네 하곤 그냥 가버렸다. 허허 이런 영악한놈을 봤나.
그래서 선생님 선생님 소리를 듣다보니 뭔가 뭉클했다. 더운 여름에 정복차림으로 왔다갔다 하려니까 더 힘들었다. 그래도 힘든만큼 기뻤다.
매일 이른아침 출근하면서 나는 선생님이다 하고 수없이 되내었다. 나는 선생님이었다.
수업중에 떠드는 학생, 대놓고 뒤돌아보고있는 학생, 자는 학생... 문제되는 친구들은 많았다. 내가 교생이라고 대놓고 무시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주로 2학년.
나는 성격이 올곧은 편이 아니었기에 그냥 두진 않았다. 그 뒤로 내 수업에서 만큼은 태도가 좋아졌다. 덕분에 나는 별 탈 없이 수업을 진행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수업. 나름 롤링페이퍼도 만들고 칠판에 인사도 적어줬었는데 짖궂은 남자 아이들 답게 엉망 진창이었다. 소중하게 챙겨서 나왔다.
감사했습니다~ 하던데 정말 감사했을까.
내 어릴적 교생선생님들의 모습도 사실 잘 기억이 안난다. 그냥 왔다 가는 사람..
저는 술이 몸에 안받아서 못마십니다ㅎㅎ했을 때, 알았다며 계속 소주를 따라주려하던 교감. 진짜 뚝배기 깨버릴 뻔 했다. 결국 안마셨다.
나름 보람차고 재밌었고 누군가에게 선생님이라 불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스승이라 불린다는 것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지금은 뭐하냐고?
IT회사에 취직해서 앱만들고있다. ㅎㅎ 중등교사 경쟁률이 워낙 쌔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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